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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동남아를 점령 한 후 전쟁 전리품들을 필리핀에 모아 일본 본토로 가져 온 후 전쟁비용을 충당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야마시타의 보물 또는 야마시타의 황금은 제 2차 세계대전중 세계를 향해 제패해 나가던 일본군이 동남아를 점령한 후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보물들을 필리핀에 모아 일본으로 가지고 오려 했으나 미국이 참전하는 바람에 필리핀 여러곳에 포로와 병사들을 동원해 땅굴, 터널, 동굴등을 파서 모다 놓은 후 전쟁이 끝나면 일본으로 가지고 오려한 보물들을 말하며 당시 말레이반도의 호랑이로 불리던 동남아시아의 일본 제독 야마시타 토모유키의 이름을 따서 야시마타의 보물로 불리고 있긴한데 야마시타 토모유키 제독은 단지 천황의 명령을 받던 말레이반도의 총 사령관 이었을뿐 일본이 동남아 국가들을 대상으로한 전쟁 전리품 회수작전은 히로히토 천황의 명령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50년 넘게 전 세계의 많은 보물 사냥꾼들이 야마시타의 보물을 찾아 나섰지만 보물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없으며 현재 야마시타의 보물을 찾고자 하는 전문 보물 사냥꾼들도 많이 사라진 상태인데 1988년에 농부 출신의 보물 사냥꾼 로제젤리오 록사스가 야마시타의 보물과 관련해 전 필리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하와이 법판소에서 고발한 일이 있다.


야마시타의 보물


2003년엔 미국의 역사학자 스털링 시그레이브스가 "미국의 비밀 - 야마시타의 보물 발견"이란 책을 펴낸적이 있는데 시그레이브스의 책에 따르면 일본의 전쟁 전리품 회수는 해양 생물학자였던 히로히토 황제를 포함한 일본 고위 정부인들 뿐만 아니라 조폭집단 구로마쿠의 두목 요시오 코마다같은 조폭들도 관련되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 졌는데 이미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등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보물들을 절도, 약탈, 도둑질해가자 일본도 어쩔수 없이 서방 강대국들 처럼 동남아시아의 전쟁 전리품들을 2차 세계 대전 전쟁충당 비용으로 쓰기위해 해양 생물학자겸 천왕 히로히토 황제가 자기 동생 치치부 야스히토 왕자를 시켜 "황금 백합"이란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조직을 만들어 동남아시아의 보물들을 비밀리에 일본 본토로 가지고 가려는 작전을 수행한다.


처음에 일본은 동남아 각국에서 모은 전쟁 전리품들을 필리핀으로 집결 시킨뒤 본토로 가지고 가려 했었으나 미국의 참전으로 동남아지역 해상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해 2차 대전이 끝나면 가지고 가려고 병사와 포로들을 시켜 땅굴이나 동굴 암실등에 보물들을 숨긴뒤 보물이 숨겨진 위치가 새어나가는걸 막기 위해 보물 숨쿠는 작업에 동원됐던 병사, 포로들을 땅굴 입구를 봉쇄하는 방법등으로 모조리 죽게 내버려 뒀다고 한다.


황금 백합 작전은 땅굴파는데 동원된 병사와 포로들외에 동남아시아의 전쟁 전리품들을 모아 놓은 위치를 알고 있는 애들을 전쟁 중 죽게하거나 연합군측에 포로로 잡히게해 전쟁 범인으로 내몰아 죽게 한다는 작전으로 말레이 반도의 호랑이로 불리던 야마시타 토모유키 제독도 미국에 의해 전범으로 몰려 1946년 2월 23일 살해당했었다.


일본이 수집한 보물들은 동남아 각지의 은행, 보관소, 박물관, 때부자집, 종교건물등에서 미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서방국가들이 노략질, 절도해 가지 않은 보물들을 수집한 것이라고 하는데 처음엔 저 보물들을 싱가폴에 모두 모은 뒤 일본으로 가지고 가려 했으나 나중에 세계 2차 대전때만 해도 아시아의 강국중 하나였던 필리핀으로 보물 집결 장소가 바뀌었다고 한다.


1937년 12월 동아시아 지역을 2천년간 황폐화 시킨 중국을 응징하기 위해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며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 또는 남경으로 점령하고 2천년간 극동아시아지역에서 노략질을 저질렀던 중국의 난징에서만 6천 600톤 가량의 중국에게 노략질 당한 금,은, 보석등의 보물들을 회수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에 의해 노예로 살던 극동아시아 사람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킨 대 일본 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노예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등의 사실상 백인들의 노예나 다름 없던 생활을 하던 동남아인들을 해방시켜주기 위해 동남아시아 노예 해방전쟁을 벌이나 1941년 12월 7일 현재는 모 세력의 음모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란 음모론이 있는 진주만 공습이 시작되어 미국이 연합군측에 참전하게 되고 대 일본 제국은 미국의 참전으로 백인들의 노예로 살던 동남아시아인 노예 해방을 성공 하지 못한체 동남아 지역의 해상권을 상실해 간다.


일본은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2차 세계 대전에 개입하는 바람에 미국이 일본의 상선들을 침몰시키고 하자 결국 필리핀 여러 지역에 보물들을 땅굴같은걸 파서 분산시켜 숨켜놓은 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보물들을 다시 찾아 본토로 운반한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고 하나 역사학자 시그레이브스의 책과 다른 서적들을 보면 미국 군사 정부 기관에서 야마시타의 보물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히로히토 황제등 일본 고위 정부인사와 공모해 저 보물들을 모두다 몰래 다른 곳으로 빼돌려 저 보물들을 팔아 1980년대 미국과 소련간 냉전기간때 비용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야마시타의 보물들이 미국과 일본 고위층이 이미 빼돌렸다는 소문이 돌자 많은 보물 사냥꾼들은 야마시타의 보물 찾기를 포기했었다고 하는데 많은 전문가들과 필리핀의 역사학자들은 시그레이브스의 책엔 미국와 일본이 야마시타의 보물들을 몰래 빼돌렸다고 하나 저러한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2년 당시 필리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마누라 이멜다 마르코스는 자기 남편이 야마시타의 보물들을 이미 상당부분 캐냈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보물 사냥꾼들의 야마시타 보물 찾기는 계속 됐으며 보물 찾기 도중 많은 보물 사냥꾼들이 죽거나 부상당하거나 파산하기도 헀는데 필리핀 국립 박물관은 지금도 야마시타의 보물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사냥 허가증과 보물 사냥꾼 면허를 발급해주고 있다.


히로히토 황제의 동생 치치부 야스히토 왕자


야마시타의 보물들이 필리핀에 숨겨져 있단 것과 관련해 필리핀대학교의 역사선생 리카르도 호세는 개소리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1943년쯤엔 일본은 이미 동남아시아지역의 해상 통제권을 상실한 시기다. 저때도 일본이 미국을 피해 동남아시아의 보물들을 필리핀으로 가지고 왔다는건 말이 안되며 대만이나 중국에 일본이 전쟁 전리품들을 어딘가에 숨겨놨다는게 더 합리적인 생각이다라고 주장했다.


필리핀 국립 역사 협회의 감독이자 역사학자 암베쓰 오캄포는 야마시타의 보물은 유명한 보물이야기인데 지난 50년동안 많은 필리핀사람들과 외국인들이 사비와 시간을 들여 야마시타의 보물을 찾아 나섰지만 50년동안 저 보물을 발견했다는 사람은 한병도 없다. 저들은 많은 돈과 여기저기서 입수한 지도, 소문, 내려오는 예기, 금속탐지기를 동원해 찾아 다녔지만 모두다 실패했다"고 말했다.


말레이반도의 호랑이로 불렸던 야마시타 토모유키 제독


필리핀에서 농사를 짓다가 보물 사냥꾼으로 전업했던 로젤리오 록사스가 1988년 3월 하와이법판소에서 전 필리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그의 마누라 이멜다 마르코스를 도둑질과 권력을 사용해 인간을 학대한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 있었는데 로젤리오 록사스의 주장에 따르면 1961년 필리핀에 위치해 있는 바구이오광역시에서 한 일본군의 아들을 만났는데 일본군의 아들이 자기에게 야마시타 보물이 있는 곳의 위치를 알려주고 또 2차 대전중 야마시타의 통역관으로 일을 했던 사람을 만나 그 통역관으로부터 자기가 한 땅굴을 간적 있는데 그곳엔 금괴와 은괴들이 쌓여 있었으며 한 절 근처엔 황금으로 만들어진 부처상이 숨겨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로젤리오 록사스가 주장했다.


저 후 몇년뒤 로젤리오 록사스는 야마시타의 보물을 찾고자하는 단체도 만들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친척 판사 피오 마르코스 로부터 보물사냥 허가증도  보물찾기에 나섰으며 1971년 마침대 바구이오광역시 근처에 있는 비밀 땅굴을 찾아 냈으며 저 땅굴안엔 단검, 장검, 라디오, 일본군복차림의 유골과 함께 90cm짜리 황금색 부처상과 함께 약 1.8m 높이로 층층이 쌓여 있는 상자들도 발견했다고 한다.


보물 탐사팀은 쌓여 있는 상자 한개를 열어 봤는데 상자안엔 금괴가 있었으며 탐사팀은 저때 황금색 부처상과 24개의 금괴가 들어 있는 상자하나를 땅굴에서 꺼낸 후 나중에 금괴들을 찾아 가기 위해 땅굴 입구를 다시 봉인 시켜놓고 돌아 갔다고 한다.


로젤리오 록사스에 따르면 땅굴에서 가지고온 금괴 24개중 7개는 팔고 부처상도 구매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날 부처상과 금괴를 구매할것처럼 한 사람들이 와가 부처상이 금으로 만들어진게 맞다는 말을 하고 돌아 갔다는데 얼마안되 당시 필리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사람들을 시켜 자기가 발견한 금괴와 부처상을 압수해가고 자기는 체포되 매질, 협박등을 당하며 약 1년동간 감금되어 있었다고 한다.


로젤리오 록사스는 매질과 협박등을 당하다 풀려난 뒤에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게 자기가 발견한 보물들을 돌려줄것을 요구했으나 돌려주지 않자 1988년 미국 하와에 법판소에서 페르디난드와 이멜다 마르코스를 상대로 도둑질과 권력을 사용한 인간 학대 혐의로 고발을 한 사건이 있었는데 로젤리오 록사사는 저 재판도중 사망했으나 1998년 하와이 수퍼 법판소는 로젤리오 록사스가 주장한 예기들과 제출한 증거들이 충분히 신빙성이 있으나 무게 1톤의 90cm짜리 황금 부처에 관한건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도둑질해간 금괴 17개만 인정된다며 이멜다 마크로스의 재산 1억 3천 2백만 달라중 로젤리오 록사스 유족들에게 6백만 달러를 줄것을 명령한 판결이 있었다.


1998년 록사스관련 재판쇼를 보면 하와이 수퍼 법판소는 로젤리오 록사스가 발견한 금괴들이 사실이란 판결은 내렸으나 저 금괴들이 야마시타의 보물인지 아니면 우연히 다른 사람의 금괴를 록사스가 발견한 것인지 저 보물이 누구의 소유였는지에 대해선 단정짓지 않았다.


하지만 로젤리오 록사사가 1971년 발견한 금괴와 황금 부처상은 일본군의 아들과 야마시타 제독의 통역관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에 근거해 찾아낸 금괴였었다.



전해저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야마시타 토모유키 제독은 2차 대전무렵일땐 아시아의 부국중 하나였던 필리핀지역 수백곳에 보물을 숨겨놨다고 한다.

댓글
  • 프로필사진 천둥소리 위의 스토리는 모두 사실입니다,,,,, ^^ 동남아에서 약탈된 보물( 금, 은, 보석, 불상, 도자기, 왕실보물등,,,,) 은 필리핀에 집결시켰고 수차례 본군함을 이용, 일본으로 이동시켰으나 일부만 성공, 나머지는 번번히 금괴와 보물을 실은채 연합군 전투기에 좌초,,,,, 결국 전쟁 막바지 1943 년부터 필리핀 다수의 지역에 분산 매장함, ( 매장지는 성당, 천연또는 인공 터널, 시청건물 밑, 학교, 공동묘지 밑, 바다 속, 대도로 밑 등에 매장함,),,,,, 그러나 중국과 조선에서 약탈된 보물은 필리핀으로 가지 않았고 한국에서 바로 일본으로 이동시켰다,
    아직 필리핀 여러곳에 큰 매장물이 있지만 깊이는 50 m 이다,,,,, 한국에도 거제도, 제주도, 마포구 신정동, 부산 감만동 잠수함 어뢰제조창, 경기도 연천, 부평 미군기지, 용산 미군기지 등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서울의 롯데호텔자리와 구 부산부청 ( 부산시청 ) 자리, 현 제 2 롯데월드 자리는 대량의 물건이 있었으나 이미 빠져 나갔다,,,,,^^
    2018.05.01 05:49
  • 프로필사진 아코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다 처분햇을겁니다
    야마시타는 처형되엇고 이 기밀을 가지고 일본은 미국과 협상햇을걸로 추정되요
    1경이면 필리핀정부가 국가적차원에서 발굴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2019.06.30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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